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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동부의 관문 플로리다.

폴이라 불러줘! 2025. 6. 22. 00:10

 

미국 플로리다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다층적이고도 역동적인 미국 남동부의 핵심 주로서, 우선 이름의 유래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플로리다라는 명칭은 1513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레온이 지역에 도착하면서 명명한 것입니다. 당시 그는 부활절 시기인 ‘Pascua Florida’, 꽃의 축제시즌에 상륙했기 때문에 지역을 ‘La Florida’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지역은 유럽인들에게 생명력 넘치고 화려한 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플로리다의 역사는 유럽 식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유럽인이 상륙한 지역 하나이며, 이후 오랫동안 스페인 영토로 남아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통치 아래에서 플로리다는 여러 원주민 집단과 갈등을 겪으며 점차 유럽식 정치 질서가 이식되었습니다. 특히 후에 플로리다 북부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도 번갈아 가며 나타났으며, 1763 파리 조약에 따라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영국에 양도하게 됩니다. 영국은 지역을 동 플로리다와 서 플로리다로 나누어 통치하며 농업 개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고, 미국 독립 전쟁 플로리다는 다시 스페인의 손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시기의 스페인 통치는 내부적으로 취약했고, 미국 이민자들의 지속적인 유입과 함께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세미놀 전쟁은 지역에서 원주민의 저항과 노예 탈출을 억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가 극적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결국 1819 애덤스오니스 조약을 통해 플로리다는 미국에 넘어가고, 1821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됩니다. 이후 1845, 플로리다는 미국의 27번째 주로 편입됩니다.

 

남북전쟁 당시 플로리다는 남부연합에 가담하며 노예제를 지지했던 주였습니다. 전쟁의 무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자원과 식량을 공급하는 후방 기지로 기능하였고, 전후 재건 시기에는 흑인에 대한 탄압과 사회적 긴장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플로리다의 정치 문화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20세기 들어 플로리다는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하나로 떠오릅니다. 2 세계대전 이후 퇴역 군인, 은퇴자,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와 함께 도시화와 경제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1971 디즈니월드의 개장은 플로리다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탈바꿈 시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올랜도와 마이애미, 탬파 등의 도시들은 관광, 무역, 금융, IT, 농업, 우주 산업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플로리다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 정치적으로 어느 정당의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사회 구조 면에서는 가지 특징이 눈에 띕니다. 첫째, 고령 인구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은퇴자의 천국이라는 별명 답게, 65 이상 인구의 비율이 미국 평균보다 훨씬 높으며, 이는 의료 체계, 사회복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둘째,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매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강타하면서 주택, 기반시설, 보험시장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에서도 플로리다는 중요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셋째, 교육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플로리다 대학교, 마이애미 대학교를 비롯한 연구 기관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며, 특히 해양과학, 의학, 우주공학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